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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8. 12. 14



"나는 슬프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잘 그릴 수가 없다."
슬프고 괴로운 얼굴을 그리고 싶지 않았던 열한 살..


"좀 단순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데,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다..."
"비너스 시험... 난 왜 이렇게 못 그리는 거지...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... 내가 소질이 없는 걸까..."
"난 아직도 완성해본 비너스가 하나두 없다... ㅇㅇ쌤은 걱정두 안 되나 보다... 그냥 별 신경을 안 쓴다..."
마침표는 없고 말줄임표만 잔뜩 써서 정말 말을 줄이려는 건지 의도를 알 수 없는 고2 때 일기들.


뭔가 해보려고 하다가도 그걸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빠지던 삼십 대 초반에는 이런 일기를 썼다.
"언제까지 니 잘난 머릿속에서만 최고의 그림을 그릴 셈이야!"


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 때마다 이런 순서로 내가 남긴 일기들을 다시 꺼내본다.
이상할 정도로 꾸준히 저런 걸 생각하며 살아왔고 그럼 이렇게 매일 그릴 수 있는 건 너무 좋은 거 아닌가, 이게 답은 아니겠지만
그래도 조금 쉬워진다.








2018. 12. 5



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이야기할 때 나는 꼭 '가장' 좋아하는 감독이며 그의 영화를 '가장' 좋아한다고 말한다.
제일 꼭대기에 두는 게 아니라 그냥 내 카테고리를 꽉 채운다는 느낌이다. 그걸 말로 하고 싶을 때 결국 '가장' 좋아한다고 말하게 된다.


<아무도 모른다>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 처음 알게 해 준 영화였는데 이 한 편으로 나는 이미 이 감독이 '내가 추구하는 모든 걸 보여 주는 사람'이라 생각했고 전작들을 구해 보며 더 놀라고 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. 아이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도, 이 사람은 진짜 그런 사람이구나 확신이 들었다. 저 아이들이 이 영화로 인해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. 그럼에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입고 마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.
시간이 지날수록 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거나 보이는 장면들. <원더풀 라이프>의 마지막 복도 장면(올려다 본 천장의 달 뚜껑이 열리고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누는 장면)과, <환상의 빛>의 마을 장면(아이들은 계속 달리고 있는데 앉아 있는 나는 어디에 눌리고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게 만들던 장면), <아무도 모른다>의 마지막 건널목 장면(하늘과 비행기와 햇빛에 눈앞이 하얘진 아키라의 소매 끝을 죽 당기며 신호가 바뀌었다는 걸 알리는 시게루의 얼굴 장면)...
최근에도, 아니 어젯밤에도 실은 거의 매일 보고 있다. 한 번도 도중에 울었던 적이 없고 늘 엔딩으로 가기 전 타테의 노래가 나올 때만 우는데, 얼마 전은 컵라면 용기에 심은 씨앗들이 아무렇게나 막 자라나있는 베란다 장면에서 갑자기 울게 됐다. 그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머리로 판단은 되었어도 이렇게 덜컥 무섭고 무겁게 들어온 적은 없었는데.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 나이가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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